본문 바로가기

메르망퉁物語

동이傳(황사)


사진출처: 영화 '지구' 스틸컷

 

 태초에 메르망퉁의 하늘을 관장하는 이가 있었으니 바로 神 동이(東夷)였다. 그는 건장한 체구에 제 몸보다 큰 활을 자유자재로 갖고 노는 힘을 가지고 있었다. 또한 추노질도 뛰어난데 배에 짐승팩 또한 장착한 대길이마냥 외모 또한 수려하여 신들 사이에서 평판이 좋았다. 이웃나라 빠띠쓰리에의 하늘을 관장하는 神 베이징덕은 자신보다 관장하는 지역도 훨씬 좁은데 늘 인기를 독차지하는 동이를 항상 못마땅했다. 자신은 넓디 넓은 땅을 관리하다보니 만년설의 고산부터 세찬 바람이 부는 사막까지 매일 강행군을 해야했고, 하루도 거르지않고 맞았던 눈바람부터 모래바람이 그의 얼굴을 그만 곰보로 만들어버렸다. 추남이 되어버린 베이징덕은 인기 좋은 동이를 시기해 휘하에 있는 108요괴를 메르망퉁에 보내 난동을 부리게 했다. 메르망퉁의 神民들은 난리법석을 떠는 요괴들에 연일 괴로움을 호소했고, 이에 참다못한 동이는 커다란 활을 꺼내 요괴 중 몇 놈을 꼬치구이로 만들어버렸다. 뻔뻔하기로는 따라올 이가 없던 베이징덕은 불포화지방산을 연신 튀기며 동이를 욕했고, 이에 양국의 하늘은 전쟁의 기운으로 뒤덮였다.

 

 일촉즉발의 긴장감이 계속되자, 동북아 분쟁 조정 위원회의 휴이시(休耳視)선생이 나섰다. 그는 결국 유혈사태가 빚어질 것이 뻔하니, 이를 피하면서도 두 신이 공정히 겨룰 수 있는 방안을 제시했다. 그것이 바로 공기놀이였다. 각 국에서 공깃돌을 각각 오백 알씩 추려 승부를 겨루고, 먼저 5000살에 도달하는 측이 승리하는 것으로 룰을 정했다. 공기놀이야 본디 메르망퉁의 전래놀이인지라 동이로써는 더할 나위 없지만, 베이징덕이 군말없이 이 제안을 받아들이는 것은 의외였다. 늘 불평불만을 부리에 달고 사는 베이징덕인지라, 이해할 수 없는 그의 행동에 동이는 뭔가 찜찜함을 느꼈지만, '제깟 녀석이 트리플악셀을 뛰어받자 마오'격인지라 개의치않으리라 생각했다. 4주간의 조정기간 후 대전을 하기로 했다. 이제 해야할 일은 공기놀이에 적합한 오백개의 돌을 구하는 것이었다. 동이는 가장 믿을 만한 수하인 風, 雲, 雨사 삼신을 불러 전국 팔도의 명돌을 금강산에 모으라 했다. 이 소식을 전해들은 전국의 돌들은 이 기회에 입신양명 해보자며 앞다투어 금강산으로 향했고, 그 중 하나가 그 유명한 울산바위였다.

 

 대전의 날이 되자, 동이는 울산바위를 포함한 오백 개의 돌을 챙겨들고는 승부처인 밴쿠버로 향했다. 자신감 넘치는 베이징덕과 그 날의 심판을 맡은 휴이시 선생은 미리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벌칙은 모래뿌리기로 하지." 베이징덕의 제안에 동이는 잠시 흠칫했다. 모래뿌리기라 하면 훗날 탈골 김나영이 소싯적 친구들로부터 당했다는 것으로 神계에서는 최대의 수치로 여겨지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허허~ 그르셔야지. 암 그르셔야지." 뭔가 일이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음을 감지한 동이였지만, 이제와서 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양국 응원단의 열띤 응원과 함께 열흘이 넘는 승부가 시작되었다. 선공을 맡은 동이는 공기놀이 종주국의 神답게 1단부터 499단까지 척척 해냈다. 이윽고 꺾기를 할 차례가 되었고, 힘차게 허공으로 뿌려진 돌들은 그만 그의 손에 튕겨 대부분이 떨어지고 말았다. 매일같이 활사위를 당기던 동이의 손은 굳은살로 대부분이 덮혀있었기 때문이었다. 공기라 함은 부드러운 손을 가지고 있을 때 유리한 법이다. 

 

 베이징덕의 차례가 되었고, 그는 연습을 열심히 했는지 1단부터 499단까지 어딘가 불안했지만 무사히 마쳤다. 베이징덕의 꺾기 차례가 되자, 동이는 왜인지 모를 불안감에 휩싸였다. 아뿔싸! 아니나다를까 녀석은 치사하게도 물갈퀴를 사용했다. 손가락 사이에 물갈퀴가 있어 돌들은 빠져나가지 못하고 잡을 때도 갈퀴로 긁듯 다  잡아채는 베이징덕이었다. 녀석이 오리인 사실을 간과했던 동이는 현기증이 몰려옴을 느꼈다. 그러나 이는 공정치못한 승부인지라 휴이시 선생에게 물갈퀴 사용의 부당함을 격렬히 항의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아니, 애초부터 받아들일 생각조차 없어 보이는 휴이시였다. 오죽하면 귀가 놀고 눈이 노는 휴이시선생일까. 아무튼 그렇게 백바퀴가 돌았고, 승부는 그걸로 끝이 났다. "메르망퉁에 가서 잘 기다리고 있어. 모래에 파묻힐 너의 모습을 상상하며. 하하하." 의기양양한 모습으로 깐족대며 베이징덕은 떠났다. 힘없이 메르망퉁으로 돌아온 동이는 이해할 수 없는 판정을 내린 휴이시 생각에 분한 마음이 식도를 따라 치고 올라왔다. 공깃돌을 힘차게 내팽겨쳤고, 돌들은 지면에 부딪힌 후 전국으로 날아갔다. 대결을 마치면 무사히 울산으로 돌려보내주겠다던 풍운우사 삼신의 말만 찰떡같이 믿고 있던 울산바위는 약속을 개떡같이 지킨 동이 때문에 설악산으로 튕겨져 지금까지 뾰족바위 끝에서 간당간당한 삶을 살고 있다.

 

 한편 내기에서 이긴 베이징덕은 약속했던 3월이 되자 빠띠쓰리에 대륙의 수풀을 헤짚고, 한 줌의 모래를 집어 메르망퉁으로 던졌다. 동이를 위시한 메르망퉁의 神民들은 그 누런 모래를 온 몸에 뒤짚어 쓴 채 기침과 가래를 멈출 줄 몰랐다. 자신의 패배에 신민들이 괴로움을 당하자, 동이는 목에 낀 황사덩어리를 제거하라며 친히 흑돼지를 내려주었다. 홍차재배만이 주요 산업이었던 메르망퉁 왕국에 흑돼지 축산업이 등장한 시기가 바로 이때이다. 오늘날 메르망퉁 왕위 계승 서열 3위에 빛나는 홍점례 공주가 아무것도 모른채 기름이 자글자글한 목항정살을 꾸역꾸역 삼킬 수 있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문제는 승부욕 강한 동이가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매년 베이징덕의 물갈퀴 편법과 휴이시의 편파판정에 도전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베이징덕 또한 그 승부를 매년 받아들이는 우를 범하고 있다. 메르망퉁의 신민들이야 황사에 괴롭든 말든, 빠띠쓰리에의 수풀이 죄다 없어지며 사막이 되어가고 있든 말든 두 신은 여전히 승부를 벌이기에 여념이 없다. 이런 행보라면 두 왕국이 죽음의 사막으로 변할 날이 멀지 않았으리라. 각성하라! 양국의 신이여! 홍점례공주여! 이젠 정말.   


'메르망퉁物語' 카테고리의 다른 글

패스트푸드  (3) 2010.03.31
3D에서 4D로...  (2) 2010.03.26
스마트폰  (0) 2010.03.23
커피  (0) 2010.03.23
무소유  (0) 2010.03.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