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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르망퉁物語

커피



 홍차 재배가 주된 사업이었던 메르망퉁 왕국에 커피가 들어온 것은 꽤나 오래 전 일이었다. 궁전의 한쪽을 채우고 있는 메르망퉁 역사박물관에 걸린 한 장의 낡은 사진이 이를 증명한다. 공주의 증조부께서 갓을 쓴 채 양탕국을 마셨던 사진인데 이로 미뤄 볼 때 꼭 100여 년 전부터 이 땅에는 커피가 존재했던 것이었다. 처음에는 쓴 탕국을 뭣 하러 먹나 하던 서민들에게까지 그 저변을 넓혀가던 커피산업은 이제 하루 세 잔 이상 마시지 않으면 안 되는 중독자가 한집 건너 하나씩은 있을 정도가 되었다. 문제는 메르망퉁에서는 커피가 재배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전량을 수입에 의존해야 했던 왕국은 커피수입량이 홍차수출량을 넘어서서 벌써 수년 째 적자를 보며 국가 재정이 흔들리고 있었다. 이에 왕은 커피 섭취 금지령을 내렸지만, 이미 커피가 주는 카페인에 흑돼지 마냥 혀가 돌돌 말린 국민들에게 씨알도 먹히지 않을 소리였다. 오히려 음성적으로 판매되어 커피 단가만 높이는 부작용만 일었을 뿐이었다.


 심각한 재정 문제를 일거에 없앤 것은 카페모카 중독자인 홍점례 공주와 왕국의 골칫덩이 흑염소였다. 아비가 그리도 강경하게 그라인더와 필터지 등 커피 용품을 회수해서 불태웠음에도 몰래 프라이팬에 생두를 볶아 믹서에 갈아 창호지에 내려 먹을 정도의 공주였다. 카페인의 인이 박힐 대로 박힌 공주는 유럽 순방에 나갔다가 놀라운 사실을 접하게 된 것이었다. 그것은 바로 세계 최고의 원두는 흑염소 똥으로 만든 것이라는 사실이다. 그녀는 모든 일정을 취소하고 급거 귀국하였고 지천에 널린 흑염소를 모두 잡아오라는 명을 내렸다. 그리고 밀수 시장에서 구입한 생두를 먹여보았다. 그러자 세계 최고 품질의 원두를, 그 쓰잘데기 없던 골칫덩이 흑염소가 마구마구 배설하기 시작했다. 공주는 서둘러 이 사실을 왕에게 알렸다. 이에 크게 기쁨을 표하며 왕은 원두 생산을 위한 흑염소 목장을 축조했다. 그 해 왕국은 값비싼 원두로 무역수지 흑자로 돌아섰다. 이에 왕은 메르망퉁이 원두 생산국임을 선포했다. 이는 메르망퉁이 일차산업국에서 이차가공이 가능한 산업국가로 전환하는 주요한 사건으로 역사에 기록된다. 이를 일컬어 ‘제 2차 산업혁명’이라 한다. 왕국의 커피 생산은 나날이 늘었고 개국 이래 최초로 흑염소 관련 주가 흑돼지 주를 이기는 기현상이 벌어지기도 했다.


 영원한 행복이란 없는 법. 나라의 재정이 불어가는 만큼 사람들의 욕심도 커져 나갔다. 홍차 재배를 하던 국민들은 밭을 갈던 괭이를 놓고 흑염소를 키우기 시작했다. 왕국의 자연에서 맘껏 뛰놀던 흑염소는 이제 닭장과 같은 좁은 우리에 갇히는 신세가 되었다. 그리고 밥만 축낸다고 구박받던 흑염소는 이제 그 역겨운 생두를 먹지 않는다고 매질 당하기 일쑤였다. 말년병장이 이등병에게 초코파이로 식고문을 하듯이 흑염소는 생두 먹기를 강요당했다. 견디다 못한 배가 ‘뻥’하고 터져버린 흑염소가 속출하였다. 그럼에도 생두 먹이기를 멈추지 않았던 왕국의 국민들이었다. 흑염소들은 집단으로 변비에 걸렸고, 원두 생산에 큰 차질을 빚게 되었다. 이에 궁전에서는 각료 회의가 열렸고 한 장관의 ‘흑염소의 배를 갈라 원두를 확보하자’는 발언이 적극적인 찬성을 끌어내며 왕국에는 피바람이 불었다. 흑염소의 배를 갈라 한꺼번에 많은 양의 원두를 얻자는 일확천금을 노는 사람들은 매일 칼질을 해댔다. 그 결과 흑염소의 개체 수는 몰라보게 줄어들었고, 마침내 멸종 위기에 처했다. 국가의 주요 산업으로 부상한 원두 생산이 사실상 불가능해진 것이었다. 이에 왕국은 급히 홍차 재배로 회귀하려 했다. 그러나 전 국민이 홍차 재배에서 손을 뗀 지가 벌써 십 수 년, 홍차밭은 이미 황폐해져 있었다.  그렇게 흑염소는 멸종 위기에 메르망퉁은 멸국의 위기에 놓였다. 그러나 아직도 철들지 못한 공주는 아비 몰래 생두를 들고 흑염소를 찾아 들판을 헤매고 있다. 오~ 왕국이여 이 위기를 어찌 극복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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