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망퉁의 제지 산업이 낙후된 것은 지난 '무소유'편을 읽은 독자라면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영화산업은 어떨까? 한 마디로 무적같던 송장군 칼침 몇 대에 '아야'하고 대길이 두고 내뺀 형세라. 관객 천만 명은 기본으로 하던 '디렉터뽕'의 신작 '마더, 파더 김미 어 원달라'가 겨우 삼백만 명에 그쳤는가 하면 찬훅감독의 흡혈 영화 '삐융'도 고작 이백만 명을 동원하는데 만족해야했다. 이렇게 원투펀치가 예상 외로 맥을 못추는 사이에 메르망퉁의 흥행기록을 고쳐 쓴 작품이 있었으니 바로 '폴리스폴리스(police-polis)'의 블록버스터 '블루 지브라, 이건 뭐 스머프도 아니고'였다. 이 영화는 명문 과학고 출신인, 그렇다. 웃기게도 영농왕국 메르망퉁에는 과학고가 있다. 뭐를 배우는 곳인지 쉬크문을 보면 판단이 잘 서지는 않지만, 왕국의 위대한 영농후계자 쉬크문이 독야청청 소개팅 혼자하는 만행을 저지를 때 본 영화로 '그가 본 영화라면'이라는 확실한 근거에 입각해 ,전 국민의 2할 이상은 봤다고 판단할 수 있겠다. 아무튼 온 국민이 선 2D 후 3D로 '보고 또 보고'한 결과 역대 최고 관객수를 갈아치웠다. 메르망퉁산 영화는 지독하리만큼 불법 다운로드질 하던 국민의 손이, 블루 지브라만큼은 예매하는 손으로 바뀌었다. 이유는 오직 하나 화려한 영상에 날개를 달아준 3D영화였기 때문이었다.
메르망퉁 왕위 계승 서열 3위에 빛나는 '혼자놀기의 달인' 홍점례공주도 이 영화를 극장에서 봤다. 물론 3D로 말이다. 몰래 전용 안경을 가지고 나오다 수거하던 이에게 걸려 국왕의 면상을 흑염소로 만들기도 했지만, '버르장머리 없는 것들이 공주의 3D생활을 방해한다'며 역정을 낼 정도였으니, 그만큼 입체영화에 쑥 빠져버리고 말았다는 반증 아닌가. 아무튼 '블루 지브라, 이건 뭐 스머프도 아니고'는 메르망퉁 영화 산업에 대한 공주의 우려를 살만큼 매력적이었다. 아직은 잘 버티고 있지만 아차하면 동네 구멍가게로 전락할 수 있다는 위기감을 느낀 공주는 중대한 결심을 한다. 바로 4D기술을 개발하기로 한 것이다. 흔히들 4D라하면 스크린에서 주는 정보에 따라 바람도 불고 냄새도 나고 하는 그런 것들을 생각하는데, 잊지마시길 이곳은 아름다운 메르망퉁 강산이라는 것을. 홍점례공주가 생각한 4D란 시공을 초월하는 기술이었다. 화면에서 손을 뻗치면 화면 속 고소한 흑돼지 목항정살이 내 손에 쥐어지는, 물론 그 순간 요금이 과금되겠지만, 뭐 그런 기술이었다. 의심마시길, 절대 메르망퉁의 넘버원 식탐가이자 허벅지가 강호동 허리만한 공주가 블루 지브라 고기가 쫄깃해보여서는 아니다. 아니라고. 어찌됐건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4차원이 아니겠는가. 공주는 소리쳐 옆 주방에서 목항정살 굽기에 여념이 없는 깜쏘유모를 불렀다.
"네? 4D요? 것두 화면 속 블루 지브라고기를 꺼내 먹을 수 있는 기술이라고요? 그게 가능한가요?"
스스로를 깜찍하고 '쏘쿨'하다고 늘 말하곤 하는 유모로서도 실현 불가능한, 그러니까 이건 뭐 흑염소 기부하는 소리로밖에 들리지 않았다.
"불가능해보이지? 이걸 가능하게 만들어 줄 사람이 있지. 그건 바로..."
말하지 않아도~ 아는 그저 바라보면~ 아는 깜쏘유모였다.
"이거니저거니회장을 말하는 건가요?"
이거니저기니회장은 메르망퉁의 최고 재력가로 꼼꼼하고 깐깐하기로 유명한 사업가였다. 이름처럼 하나에서 열까지 이거니저거니 잔소리를 하는 열성 경영으로 그의 회사를 글로벌 그룹으로 키워내기도 했다. 그러나 작년 아들한테 편법증여를 한게 들통나 지금은 흑돼지형을 선고 받고 흑돼지가 되어 성의 뒷뜰에서 노닐고 있다.
"이거니저거니회장이라면 4D를 만들어줄게 틀림없어. 그러기 위해서는 그에게 특별사면을 내려주고 경영 일선에 복귀시켜줘야겠지."
"국민들의 반발이 거셀텐데요. 어쩌시려고."
"다, 방법이 있단다."
공주는 이미 4D가 만들어진냥 행복한 미소를 지으면 목항정살을 먹으러 식당으로 향했다.
그날 밤부터 왕국의 거리마다 흉흉한 소문이 돌았다. 메르망퉁 왕국에 무시무시한 위기가 닥칠 것이라는 소문이었다. 왕국의 국민들은 그게 어떤 위기인지 정확히 알지는 못했지만, 모이기만하면 그 위기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이오전오(以誤傳誤)에 도청도설(道聽塗說)이라' 헛소문이 꼬리를 물고 퍼져나가는 것으로 바로 추노를 열심히 시청한 홍점례공주의 계략이었다. 영문도 모르게 어느 집의 냉장고가 폭발하는 불길한 징조도 이 위기설을 퍼트리는데 일조했다. 국민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불안에 떨었고, 이에 공주는 이 위기를 극복하려면 이거니저거니회장을 복귀시켜야 한다는 성명서를 냈다. 이전까지 흑돼지로 변한 이거니저거니회장에게 이거 저거 먹을거리를 주며 놀리던 국민까지도 공주의 말에 동요하며, 회장의 특별사면과 경영복귀는 급물살을 탔다. 결국 편법증여를 했던, 부정한 CEO는 공주의 4D 욕심에 사면되고 회장직에 복귀되고 말았다. 국민들은 공주가 얘기하는 위기의 실체를 아직도 모른다. 실체도 모르는 '위기'라는 애매모호한 두 글자에 이렇게 메르망퉁왕국은 또 하나의 부조리를 목도해야했다. 왕국의 위대한 스승인 에궁선생이여, 도대체 얼마나 더 이런 상황에 침묵하고 있으려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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