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당신은 아는가 흑돼지버거가 있다는 사실을...
제주시의 끝없이 펼쳐진 해안도로를 달리다보면, 스스로의 눈을 비비지 않을 수 없다. 도로변을 따라 빼곡히 늘어선 회집들 한켠에 자리잡은 크라제버거 매장을 보게 되기 때문이다. 언덕 위 하얀 건물에 위치한 이 매장에서는 넘실대는 파도를 눈으로 신선한 크라제버거를 입으로 동시에 즐기는 이색적인 체험을 할 수 있다. 대도시에만 있을 법한 크라제버거를 제주에서 만나는 낯섬만도 기분이 묘해지는데, 더욱 놀라운 것은 이 곳에는 흑돼지버거가 있다는 사실이다. 축산업과 연계해서 크라제버거에서는 지역 특산물인 흑돼지를 사용한 독특한 버거를 선보이고 있다. 신기함에 흑돼지버거로 해봄이 어떻냐는 점원의 추천을 흔쾌히 받아들였다. 그러나 동행은 늘 먹던 '마티스'를 주문했다.
#2. 햄버거에 관한 놀라운 진실, 라이스버거.
김대중 정부에 나는 대학에 입학을 하였다. 고등학교와는 비교도 안되게 드넓은 캠퍼스에서 깊이 들이마신 공기는 재수로 쪼그라들었던 마음까지 일거에 펴주었다. 내가 다니던 대학에는 신입생의 3,4월 밥값은 선배들이 모두 책임져주는 넓은 오지랖의 전통이 있었다. 선배라 봤자 동년배가 절반 이상인지라 극구 사양했겄만 선배가 선심 쓰듯이 끌고간 햄버거 매장에서 신기한 버거를 맛봤다. 바로 쌀로 만든 라이스버거였다. 키가 껑충한 소녀가 익살스런 표정으로 광고에 출연해 큰 인기를 끌었던 그 버거는 당시 대학생들 사이에서 단연 화제였다. 이른바 버거소녀라고 불리우던 그녀의 표정만큼이나 놀라운, 더럽게도 맛이 해괴망측한 버거로 말이다. 한 입 베어문 순간부터 이 놀라운 버거를 만든 녀석의 면상이 보고 싶어졌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그런데 나중에 알게된 것이지만, '상부의 지시' 그러니까 정부의 압력행사가 있었단다. 농민살리기 차원에서 쌀소비를 촉진시킬 방안을 궁리한 결과물이 바로 이 라이스버거였단다. 그렇게도 요상한 맛의 햄버거의 인기도 잠시, 얼마 가지 않아 소비자의 외면 속에 매장에서 볼 수 없었다. 최근 들어 다시 출시되었다고 하는데, 신입생 때의 트라우마인지, 지금도 손이 가지 않는다.
#3. 라면업계의 비상? 비상!
이명박 정부의 크고 작은 사업 중 단연 나의 눈길을 끄는 것은 쌀라면이었다. 나름 미식가임을 자처하며 새로운 음식이 나오면 겁내지 않고 도전하는 편이기에 뭐 당연한 얘기지만. 아무튼 쌀소비 증대라는 '라이스버거'와 같은 탄생의 비밀을 가진 쌀라면이 출시되자 마자 먹어봤다. 예외가 예외일 수 있고, 특별할 수 있는 것은 그것이 흔치 않기 때문이리라. 역시나 더럽게도 맛이 없었고, 역시나 소비자의 외면을 받았다. 쌀소비 증대 뿐만 아니라 라면업계도 비상할 계기를 만들어 주겠다던 대통령의 말은 그렇게 업계의 비상으로 끝이 났다. 웃긴 것은 대통령의 말 한 마디에 마음에도 없는 쌀라면을 개발해야 했던 업계 CEO들에게 왜 그 맛밖에 못 내느냐 대통령이 타박을 준 사실이다. 재계 CEO들을 자신의 부하 정도로 밖에 생각하지 않는 CEO마인드의 대통령의 면모를 볼 수 있었다. 어디 이 뿐이랴. "왜 우리는 닌텐도를 못 만드냐?", "미국산 쇠고기 수입해도 안 먹으면 그만아니냐?" 등등 '말하면 현실이 되는줄 믿는'대통령다운 발상에서 나온 어록은 수도 없다. 어이 없었을 업계CEO들에게 '원래 다 그런거예요'라는 심심한 위로의 말을 전한다. 그래도 '이왕이면'이라지만 농민들의 문제를 풀어야 책임을 국민에게 넘긴 모양새라 입이 쓰다. 그저 대통령에게 한 마디 하고플 뿐이다. "쌀라면 한 뚝배기 하실래예?"
#4. 후회
흑돼지버거를 시켰던 나는 먹는 내내 부러운 눈으로 '마티스'를 먹는 동행을 부러운 눈으로 봐야했다. 빌어먹을 흑돼지. 맛이 꼭 흑염소 같네그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