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차재배가 국가의 기간산업인 메르망퉁 왕국의 가장 오래된 서적은 [쉐끼리문의 홍차재배기]로 알려져 있다. 쉐끼리문이라 하면 홍차의 아버지로 불리우는 이로 왕국의 위대한 영농 후계자 쉬크문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이자 이웃국인 빠띠쓰리에에서 홍차씨를 처음 들여온 선구자였다. 홍차재배기에 따르면 그는 국경 수비대의 삼엄한 감시를 뚫고 '똥꼬'에 홍차씨를 숨겨 들어왔다고 한다. 무사히 메르망퉁으로 들어오기는 했지만 심각한 변비환자였던 그는 도성에 도달하기까지 변을 보지 못해 그 귀한 홍차씨가 그의 장에서 그대로 화석화될 뻔 했다. 다행히도 도성에 도착한 그 이튿날 변을 볼 수 있었고, 그의 배설물 속 영양분을 흠뻑 머금은 홍차씨는 땅에 심어지는 즉시 쑥쑥 자라 전 국토에 홍차나무가 넘쳐났다. 여기까지가 일반 국민들이 알고 있는 보편적 사실이다. 그러나 알려지지 않은 무서운 진실이 그 이면에 있다.
볕이 좋던 4월의 어느 봄날 홍점례공주는 성의 안뜰에서 흑돼지와 함께 뛰놀던 중 문득 허기를 느꼈다. 흑돼지 목항정살을 너무 사랑한 나머지 돈육으로 점철된 섭생으로 종아리에 부스럼이 날 정도였던 그녀였다. 왕의 개입으로 지금은 멈췄지만 한때 식육업계에서는 그녀의 돈육편향적인 태도를 비난하는 성명을 매일 발표하기도 했었다. 어쨌든 공주는 자신의 벗이라는 사실조차 잊고 식욕이 가득찬 눈빛으로 흑돼지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그녀의 곁에서 수년간 무수한 위기를 겪었던 흑돼지였다. 공주의 탐욕스런 눈빛을 감지하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냅다 도망쳤다. 흑돼지의 뒤를 쫓아 정신없이 뛰기를 한참, 공주는 어느새 자신이 들어와서는 안되는 방에 와있음을 깨달았다. 이 방은 오직 메르망퉁의 왕만이 출입할 수 있는 왕의 서재였다. 왕 이외의 인물이 이 방에 들어오면 직위고하를 막론하고 교수형에 처할 정도로 엄격히 출입이 제한된 방이었다. 황급히 방을 나가려던 공주의 눈에 낡은 책 한권이 들어왔다.
호기심 그것은 때로는 많은 사람을 죽음으로 몰고가는 우울증보다 무서운 질병 아닌 질병이다. 공주는 알 수 없는 힘에 이끌려 서적을 집어들었다. 파피루스로 이뤄진 책을 집을 때 바스락거리는 소리는 마치 '날 펼쳐봐'라고 말하는 듯 했다. 혹여나 아바마마가 들어올까 심장이 터져나오기 일보 직전이었지만, 이미 그녀는 금단의 사과를 집어든 이브였다. [왕之심경]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는 책의 첫 장에는 이런 문구가 적혀있었다. '위대한 메르망퉁을 다스리는 왕이며 순결한 혈통인 자에게만 이 책을 허락하노라.' 그렇다. 이 책은 오직 왕만이 열람할 수 있는 수 천년을 지속해 온 왕국의 비사와 통치 비법이 기록된 제언서였다. 얼핏 봐도 일반에게 알려진 最古書 쉐끼리문의 홍차재배기 보다 훨씬 오래된 책이었다. 책에 담긴 비사는 실로 놀라웠다. 그 중에서도 공주의 선조이자 홍차재배를 처음 시작했던 명망높던 왕이 남긴 기록은 놀랍다 못해 가히 충격적이었다. '홍차에 국운이 달려있어 내 부득이 숨긴 사연이 있다. 쉐끼리문이 변을 봐서 메르망퉁에서 홍차재배가 시작되었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었다. 쉐끼리문의 똥꼬 속에서 배출되지 못한 채 홍차씨는 그대로 싹을 틔었고, 왕국은 그 싹을 살리기 위해 쉐끼리문을 그대로 암매장했다. 때문에 왕국은 홍차 재배가 가능해졌다.' 잔인하고도 무서운 진실을 접한 공주는 순간적으로 터져나오려던 비명을 간신히 주먹으로 입을 틀어막음으로 참을 수 있었다.
넋이 나간 채 자신의 방으로 돌아온 홍점례공주는 그 날부터 잠을 이루지 못했다. 또한 그 좋아하던 흑돼지 목항정살마저도 끊고 물 한 모금도 섭취하지 않았다. 나날이 야위어가는 공주를 걱정한 깜쏘유모는 그녀가 간절히 바라던 해외 원정 벚꽃놀이를 권유해보았지만 공주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야심한 새벽, 공주는 자신의 병간호에 지쳐 잠든 유모를 뒤로 하고 방을 나섰다. 왕의 서재로 가기 위함이었다. 사실 그녀가 제대로 된 생활을 영위하지 못함은 그 날 받은 충격보다는 그 충격 뒤로 엄습하는 호기심 때문이었다. 출입이 발각되면 어쩌면 공주 지위가 박탈된 채 국외로 추방될 지도 모르지만, 호기심이 두려움을 앞섰다. [왕之심경]에 담긴 나머지 내용이 너무도 궁금했던 공주는 다시 훔쳐보기를 결심했다. 어두컴컴한 왕의 서재에서 달빛에 비춰 책을 읽기 시작한 공주는 몇 시간을 꼼짝도 하지 않았다. 책에는 차마 입에 담을 수 없을 정도로 불쾌한 진실들이 득실댔다. 결코 알아서는 안될 금단의 사과를 베어문 공주는 엄습하는 공포에 몸을 떨었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그러나 그냥 죽으라는 법은 없는 법, 숨조차 쉴 수 없는 두려움에 바들바들 몸을 떨던 그녀에게 책은 한줄기 빛을 내려주었다. 책의 말미에는 역대 왕들이 국민들에게서 이 무시무시한 진실들을 어떻게 숨겨왔는지 어떻하면 국민을 기만하며 슬기롭게 위기를 헤쳐나갈 수 있는지에 대한 비법이 적혀있었다. 그것은 바로......
"지금은 곤란하다. 조금만 기달려달라."
'아바마마가 입버릇처럼 말하던 말은 괜한 것이 아니었군.' 방에 돌아온 공주는 두 다리 쭉 뻗고 깊은 잠에 들수 있었다. 이튿날부터 공주는 평소처럼 흑돼지 목항정살을 '미친 년 널 뛰듯이' 먹었고, 국민의 혈세로 해외 원정 벚꽃놀이도 떠났다. 그녀가 다시 평소 생활로 돌아올 수 있었던 것은 오직 선대왕들이 남긴 믿음직한 그 한 마디였다.
"지금은 곤란하다. 조금만 기달려달라."
이건 멘트가 아주 가제트 팔이네. 어떤 상황에 다 적용되는 만능 멘트네 그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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