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봄날 이웃국인 빠띠쓰리에와의 일방적인 협상으로 홍차재배가 어려워져 마음이 뒤숭숭하던 왕국의 위대한 영농후계자 쉬크문이 우물을 찾았다. 에메랄드빛 돔지붕을 걷어내자 오늘도 어김없이 싸워대는 개구리들이 있었다. 자전거를 탄 청개구리가 다른 개구리에게 하는 '뭘봐 개새끼야'라고 외쳤다. 이에 질새라 다른 개구리는 자전거 탄 개구리에게 '넌 우물 안보다는 전원생활이 어울려 이 흑염소 같은 놈아'라고 외쳤다. 피식 터져나오는 웃음을 참으며 계속 청개구리들의 욕짓거리를 듣고 있노라니 왕이 무서워 허공에 대고 욕 한번 제대로 못해봤던 답답한 마음이 뻥 뚫리는 것 같은 쉬크문이었다. 스트레스따위는 단 번에 날려버릴 수 있었다. 아니, 스트레스 발산을 넘어 카타르시스까지 느낄 수 있었다. 이것이 현재 이 이 우물, 국회의사당이 존재하는 의미였다. 쉬크문은 욕설 가득한 액션 블록버스터 한 편 봤다는 심정으로 휘파람을 불며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지금으로부터 몇 십년 전 메르망퉁은 왕권정치가 이뤄지는지라 국민들의 의견따윈 무시되기 일쑤였다. 국민들의 요구가 관철되는 정책은 좀처럼 볼 수 없었을 뿐더러 국민의 삶은 왕의 좁은 식견에서 비롯한 정책으로 점철되어 있었다. 한 마디로 서민의 삶이라고 살아보지 못한 이들의 탁상공론이 낳은 현실배반적인 정책들만이 날마다 쏟아졌다. 때문에 국민이 받는 스트레스는 나날이 늘어만갔다. 높은 스트레스 지수가 주요산업인 홍차재배에도 악영향을 끼쳐 나라가 어수선할 무렵 도성 안 노송나무 옆에 자그마한 우물이 생겼다. 에메랄드빛 돔지붕이 덮고 있는 이 우물은 누가 세웠는지 아무도 몰랐다. 왕국의 위대한 스승이신 에궁선생이 애옥한 국민들의 삶을 가여이 여게 세웠다는 소문이 항간에 돌았지만, 정작 본인은 아니라며 손사래쳤다. 아무튼 이 우물에는 개구리들이 살았는데, 왕국의 신문고랄까, 어디에도 하소연할 수 없는 국민들이 돔지붕을 열고 답답한 심정을 토로하면 개구리들이 앵무새마냥 그 사연을 되풀이하며 울어대 곧 왕에게 전달이 됐다. 왕국의 자동차왕 이애도가 이 곳에서 떠나간 자신의 첫사랑을 애도한 이후 왕의 배려로 그 사랑이 돌아온 사건 이후로 모든 국민들이 이 곳을 소원을 비는 사당인냥 여겼다. 그래서 이 곳을 왕국의 노송나무 옆 사당이란 의미로 국회의사당(노송나무회檜)이라 불렀다.
이 우물안에 사는 개구리들이 처음 이 곳으로 어떻게 흘러 들어왔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국민의 의견을 대변할 유일한 창구로써 우물이 역할을 하고 이에 감복한 국민들이 개구리들이 먹을 녹을 챙겨준 이후로 선별된 청개구리들만이 이 곳에 입주할 수 있었다. 4년마다 선발심사가 열리는데 엄격한 탓에 대부분이 낙방의 아픔을 겪고 오직 몇몇 청개구리들에게만 우물 안 입주가 허락된다. 그 심사라 하면 왕에게 전달된 만큼 좋은 목청을 지니고 있는지, 쉴 새없이 울 수 있을만큼 성대는 강한지를 보는 음성테스트를 일컫는다. 이들에게는 왕국의 개구리란 의미로 國자가 새겨진 금뱃지가 주어지는데, 왼쪽 가슴팍에 뱃지를 달았다고 하여 국민들은 이들을 뱃지族이라 불렀다. 그런데 왕의 잘못된 정책이 계속 이어지면서 개구리들에게 하소연하는 국민들이 늘어가는만큼 녹이 쌓여만 가자 우물 안 입주를 둘러싼 경쟁도 치열해져만 갔다. 4년마다 열리는 선발심사가 있는 날이면 전국의 개천이란 개천에서 무수히 많은 청개구리들이 몰려들었고, 입주를 위해 서로 싸우기 일쑤였다. 왕에게 국민의 의견을 전달하기 위해 쓰이던 목청은 서로를 비방하는데 쓰였다. 서로 녹을 더 차지하기 위해 선발대회 뿐만 아니라 우물 안에서도 싸움은 계속되었다. 더러는 그 긴 뒷다리를 이용해 점프킥을 날려 정적을 돔지붕 밖으로 날려버리는 일도 벌어졌다. 이에 영감을 얻은 왕립방송국의 pd 스뎅김이 '지붕뚫고 하이킥'이란 촌극을 만들자 국민들은 열렬한 지지를 보내기도 했을 정도였다.
그렇게 몇 십년이 흐르는 동안, 우물은 변질했다. 국민들이 하소연을 늘어놓음으로써 스트레스를 해소하던 우물은 어느새 개구리들의 싸움을 지켜보며 스트레스를 푸는 공간으로 바뀌었다. 맑은 물이 가득찼던 우물도 개구리들의 막말과 욕설이 오가는 동안 온통 푸른 이끼로 가득찼다. 그 미끈둥한 이끼에 몸을 문대며 몸싸움을 해댄 통에 개구리들은 온 몸이 푸른 빛으로 바뀌었다. 이때부터 국민들은 자신들의 의견을 듣기는 커녕 자기들 마음대로 행동하는 이를 일컬어 청개구리라 부르며 에미애비도 몰라볼 놈들이라 비난했다. 이렇듯 뱃지족의 역할이 왕과 국민의 소통창구에서 욕설 가득한 액션 블록버스터로 바뀌자 청개구리들을 뽑는 기준마저 바뀌었다. 엄격한 음성테스트는 얼마나 욕설을 잘할 수 있는지를 보는 것으로 바뀌었고 지붕뚫고 하이킥을 날릴 수 있는지를 보는 킥력테스트가 추가되었다. 아무튼 그저 욕 잘하고 발길질 잘하는 것만으로도 국민들이 주는 녹을 챙겨먹을 수 있어 국회의사당의 개구리들은 편안한 삶을 영위할 수 있었다.
그러던 중 우물 안 개구리들에게 큰 위기가 찾아왔다. 인터넷 바다에서 표류하던 '구라대마왕'이란 작자가 왕비호감을 대동하고 '요즘 세상에 우물이 왠 말이냐며, 직접 우물을 찾는 국민들의 수고도 덜 겸 수도꼭지를 보급하자'고 주장한 것이었다.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막말꼭지'라는 뜻에서 '스해막꼭'이라 불리우는 이 꼭지를 각 가정의 tv수상기에 설치하자는 주장이었다. 스해막꼭을 틀면 비록 몇 십년의 내공이 쌓인 청개구리들의 욕설에 비하면 아가 옹알이 정도였지만 어느 정도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는 막말이 쏟아졌다. 편의성과 접근용이성이 뛰어난 스해막꼭과 막말을 일삼는 구라대마왕에 스트레스 만빵이던 국민들은 환호를 보냈다. 우물의 청개구리들의 한층 강한 욕설은 4년에 한 번 열리는 선발대회에서나 실컷 듣고 소파에서 편하게 스해막꼭을 틀어 스트레스를 해소하자는 국민들이 꽤 생겨났다. 자신의 설 자리를 빼앗긴 뱃지족 청개구리들은 초조하고 불안했다. 그리고 그 마음은 어느새 분노로 바뀌어 스해막꼭에 대한 비난을 펼쳐냈다. '어찌 tv수상기에서 막말이 나올 수 있는지, 국민의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카타르시스를 안겨주는 고귀한 작업에 어찌 엄격한 심사도 거치지 않은 저질들이 발을 걸쳐 놓을 수 있는지'에 대한 성토가 연일 이어졌다. 격분한 몇몇 청개구리들은 tv수상기 업체의 사장을 우물로 불러 '물갈퀴 쪼인트'를까기도 했다. 지금 메르망퉁 왕국은 우물의 존재 의의를 막말꼭지에 의해 빼앗긴 뱃지족 청개구리들의 울음소리로 온 나라가 들썩이고 있다.
"오늘 점심은 개구리반찬으로 해볼까나."
이 모든 상황을 예상이라도 했단 듯 여우같은 왕은 말했다. 창 밖의 청개구리들의 울음소리따위는 아랑곳하지 않는다는 태도였다. 아니 오히려 즐긴고 있다는 표정을 왕은 짓고 있었다. 이에 꽃놀이에서 돌아온 홍점례공주는 흑돼지 목항정살이 아니라며 투덜대고 있었다. 그려 맘대로 하시게들. 인생 뭐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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