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망퉁 왕위 승계 서열 3위에 빛나는 홍점례공주는 그 시작이 왜 양담배였는지 잘 기억이 나질 않는다. 분명한 것은 모두가 공주가 양담배를 피우는 것을 싫어한다는 사실이다. 어쩌면, 양담배가 아니라 그냥 공주가 담배를 피우는 행위 자체를 싫어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것이 왕국의 체면을 깎아내리는 '짓'이라 여기기 때문일테지. 그래서 하나같이 못마땅해 하는 것이다. 일찌기 졸렬한 왕의 선친이자 공주의 조부이신 위대한 追盧께서 "담배는 기호식품이다" 선언했었음에도 불구하고 누구하나 공주의 기호같은 것엔 터럭만한 관심조차 보이질 않는다.
홍점례공주는 동이 틀 무렵 몰래 방을 빠져나왔다. 성의 뒤뜰, 흑돼지의 무리 속 몰래 숨겨둔 백양을 찾기 위함이다. 메르망퉁의 속담에 불가능한 일을 일컬는 '흑돼지 속 백양찾기 '란 말이 있을 정도로 흑돼지와 백양은 정말이지 놀랍도록 비슷하다. 오죽하면 고집불통 농사꾼 쉬크문이 흑돼지 속에서 백양을 찾기를 십여년 한 끝에 기브업을 선언하며 '백양치사빤스'란 명언을 남겼을까. 아무튼 날이 새는 지도 모른채 이웃 새마을국에서 공수해 온 열탄불고기 양념을 바른 목항정살을 먹었기 때문에 한대 빨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왜 양을 찾느냐고? 말하지 않았던가 공주는 양담배를 핀다고 . 준비해 간 바리캉으로 조심스레 양의 털을 민 뒤 정성스레 비벼 종이로 돌돌 말면 근사한 양담배가 된다.
양은 공주가 좋아하는 담배의 원료가 된다는 지극히도 사적인 이유로 성내에서 사육이 금지된 동물이다. 공주는 지난 달에도 양담배를 피다가 왕에게 걸려 호되게 야단 맞았다. 몰래 기르던 양도 빼앗겨 아비의 카시트와 어미의 재킷 안감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그렇지만 공주는 다시금 몰래 양을 들여와 키우고 있는 것이었다. 깜쏘유모는 담배의 인이 박혀서라지만 아니다. 그저 그건 기호식품이고, 공주는 인간으로서 자신의 기호에, 욕망에 충실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치익' 하는 소리와 함께 담배는 타올랐고, 공주는 한 모금 깊이 빨아들였다. 양털의 개운함이 돼지기름이 립글로즈화 된 입술부터 기름벽 친 위장까지 퍼지는 듯 했다. "밤새 목항정살을 먹어도 흑돼지로 변하지 않는 이유, 바로 이맛 때문이지." 공주는 중얼거리며 폐속에 담배연기를 꾹꾹 눌러 담고 있었다. 공주의 귓등을 울리는 나지막한 소리가 들린 건 그때였다. 왕의 심복이자 왕국의 위대한 스승 에궁선생이었다. 딱 걸렸다. 이 일은 즉시 왕에게 고해졌으며 공주는 왕으로부터 심한 질책과 함께 목항정살 섭취 금지라는 엄벌을 받았다.
'단지 기호식품인데...' 억울하고 분한 마음에 어미를 쳐다보는 공주였지만 이내 고개를 떨구고 말았다. 이미 어미는 새로운 자켓이 생길 것이라며 크게 기뻐하고는 무슨 색으로 할까를 고민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성 밖 국민들은 저리도 자유로이 담배를 피워대는데, 자신의 기호에 맞는 삶을 영위하는데 그럴 수 없는 자신이 싫었다. 괜히 公主로 태어나서 인간의 기본 권리도 보장 못 받는 자신의 처지를 비관한 끝에 공주는 자살을 결심한다. 그날밤 공주는 전문 자살브로커인 백설공주 계모를 통해 얻은 자살사과를 크게 한 입 베어물고는 세상과의 하직을 고했다.
모 지방법원에서 일하는 홍점례 9급公務員은 낮잠에서 깨어 자신의 앞에 놓인 권고사직서를 보았다. 잠들기 전 흘린 그녀의 눈물과 콧물로 범벅이 된 사직서였다. 그녀가 작년 시국선언에 동참했다는 것이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을 어겼다는 이유로 받은 권고사직서였다. 인간이기에 앞서, 이 나라 국민이기에 앞서 공무원이기를 강요당하는 나라에 사는 것에 분노가 치밀었다. 그녀는 오늘부터 담배를 피우리라 결심하고는 근처 편의점으로 간다. 물론 이 더러운 나라의 담배가 아닌 양담배를 사서 피울 것이리라 다짐에 다짐을 더하는 홍점례 공무원이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