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망퉁物語

새 하드웨어를 발견하였습니다

창작집단 날 2010. 3. 8. 13:27





“한국 사람 맞아요 저. 근데 자이니치예요.”

“네?”

“나, 한국 사람이지만 한국사람 싫어요.”

 서늘한 밤공기가 뒤덮고 있는 신주쿠의 뒷골목에서 만난 김수남이 내게 던진 첫마디였다. 라멘을 먹던 젓가락을 내려놓고 그의 팔을 당겨 자리에 앉혔다. 그리고 중국인으로 보이는 주인장에게 청해 잔을 그에게 건넸다. ‘또로록’ 술이 좁은 주둥아리를 통해 잔으로 흘러들어갈 때 이야기는 시작됐다.


 끝까지 귀화하지 않고 한국인으로 살겠다는 아버지의 고집 때문에 중학교까지 수남씨는 이지메를 당했다. 도시락에 흙을 뿌리는 것은 예삿일이요, 샤프펜슬로 등을 찍히기도 여러 번이었다. ‘아버지 우리 귀화해요’라는 말이 늘 식도까지 차올랐지만, 아버지의 고국사랑을 알기에 단 한 번도 입 밖으로 내지 못했다. 아버지의 사업차 오사카에서 도쿄로 이사왔을 때는 수남씨가 고등학교에 진학할 무렵이었다.

“동경 한국 학교에 가라.”

늘 일본인 사이에서도 한국인임을 당당하게 밝히라던 아버지의 입에서 나온 말은 뜻밖이었다.


 한국 학교는 재일교포와 주재원의 자녀들로 구성돼 있다. 이곳에서는 한국어로 한국의 정치 그리고 사회, 역사, 문화 등을 가르치고 있었다. 분위기도 비록 주재원파와 교포파로 갈려 서로 대립과 마찰의 각을 세우기는 했지만 지옥과도 같던 중학교 생활에 비하면 수남씨에게는 꿈만 같았다. 처음에는 그를 곤혹스럽게 했던 한국어도 그가 노력하자 수업의 절반 이상을 알아들을 수 있게 되었다. 행복감에 젖어있던 고교생활, 그는 이곳에서 한 가지 결심을 한다. 보다 한국어 공부에 정진하여 아버지의 조국에서 대학을 다니는 꿈을 꾼 것이다.   


 한국에서의 삶은 그의 바람과는 달랐다. 수남씨는 한국말이 어눌하다는 이유로 학과친구들로부터 따돌림을 당했다. ‘그래도 어울리다보면 나아지겠지’하며 참석한 술자리에서 그는 결코 잊을 수 없는 경험을 하게 된다. 단지 술을 잘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여럿으로부터 비아냥거림을 당했던 것이다. 분명 술을 못하는 친구는 자신 혼자가 아니었는데 모두 그만을 질타했다.

“쟤 피 속에는 쪽바리의 피가 흐를 꺼야. 한국 사람이라면서 말도 잘 못하고 술도 못 마시고. 반쪽바리. 분명 한일전이 열려도 쟤는 일본 응원할 놈이라고.”

술에 취해 손가락질 하며 윽박지르는 동기를 뒤로 하고 수남씨는 술집을 나섰다. 그리고 일주일 후 쓰린 상처만을 간직한 채 아버지의 조국을 떠났다.


‘찰칵’

김이 차오르는 라멘을 배경으로 수남씨의 사진을 찍었다.


 집에 돌아오니 벌써 자정을 훌쩍 넘긴 시각이었다. 우롱차를 따뜻하게 데워 컴퓨터 앞에 앉았다. 그리고는 카메라와 컴퓨터를 연결시켰다.

‘새 하드웨어를 발견하였습니다.’라는 알림창과 함께 수남씨의 무뚝뚝한 얼굴이 화면을 가득 채웠다. 그래. 어쩌면 우리는 그네들을 이질적인 것으로 생각해왔는지 모른다. 그래서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바라봐주기도 전에 바이러스 마냥 취급해왔던 것이다. 새 하드웨어가 감지되었다는 컴퓨터의 경고처럼 우리의 의식 시스템이 무심코 작동했는지도 모른다.  그게 조국을 갈망하던 그들에게 얼마나 큰 상처로 남을 지도 모르는 채 말이다. 화면 속 수남씨가 담담히 말을 한다.     

“한국사람 맞아요. 근데 자이니치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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